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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기도

     

    신약성서, 특히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은 종교 이야기와 이스라엘 역사의 교차점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마태복음 21장과 요한복음 17장에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풍부한 역사 연대기를 통해 울려 퍼지는 중추적인 순간을 목격합니다. 영적인 가르침과 성지의 역사적 태피스트리를 연결하는 층을 풀어내면서 이 장들을 탐구해 봅시다.

     

    1. 예루살렘 입성(마태복음 21장):

     

    마태복음 21장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군중의 열정과 당나귀를 타는 상징은 이스라엘 역사에 깊이 뿌리내린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반영합니다. 이 순간은 승리의 입성을 기념하는 다윗과 같은 역사적 인물을 반영하는 구원자에 대한 기대에 공감합니다. 승리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는 유대인의 전통을 떠올리게 하며 초막절과 마카베오의 승리와 연결됩니다.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의식 속에 뿌리 박힌 메시아적 희망의 성취로서 예수의 역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 이 아이들이 하는 말이 들립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들린다. '주께서 어린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주를 찬양하게 하시리라'라고 하신 말씀을 읽어본 일이 없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기원 후 280년- 337년은 콘스탄티누스황제 시대로 313년 밀라노 칙령에 의해 로마에서 비잔틴으로 수도를 옮겼다. 동로마 제국은 정교뢰가 발생하여 믿음에 중점을 둔다. 부활의 십자가는 부활하신 축복을, 고통과 수난을, 선한 행위를 중요시한다. 예수님은 3년 6개월간 갈릴리 바닷가에서 전도하셨다. 그동안 예루살렘은 서너 번 올라가셨다.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가셨을 때는 일요일 입성이었다. 목요일 밤에 붙잡혀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일요일에 부활하셨다. 예수님의 생애와 부활은 무엇을 구하려는 것인가? 감람산은 해발 팔백 미터로 벳바게와 예루살렘과의 중간에 위치한다. 토요일은 베다니아에서 주무셨다. 그곳에 나자로, 마르타, 마리아가 살았고, 마리아가 1년 치 임금에 해당하는 향수를 예수님의 발에 부은 곳이다. 예수님은 일요일에 새끼 암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승리의 입성이었다. '맞은편 마을'은 베다니아로 추정된다. 말은 전쟁터를, 나귀는 평화를 나타낸다. 또 나귀는 겸손과 순종적인 예수님을 상징하고, 어린 새끼에서는 신성함이 드러난다. "시온의 딸에게 알려라"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 알리라는 것이다. '겉옷을 깔아준다'는 그 당시의 풍속이며 '나뭇가지'는 종려나무로써 승리를 상징한다. 유월절은 목요일 밤이며 '호산나'란 다윗의 자손으로 그리스도 만세를 뜻한다. 예수의 권한에 대한 질문은 화요일에, 성전 정화는 월요일에 하신다. 33만 평의 성전 뜰은 이스라엘의 뜰과 이방인의 뜰로 나뉘고, 거기에서 바리새파의 제사장 가족들이 환전장사를 했다. 그들은 페니키아 화폐를 가장 선호했으며 동물장사도 하였다. 성전 뜰까지 이권들이 끼어들었다.

     

    2. 대제사장의 기도(요한복음 17장):

     

    요한복음 17장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기도하시는 가슴 아픈 순간을 보여줍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의 지상 사역과 임박한 십자가 처형 사이의 다리 역할을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백성을 위해 중보 하는 대제사장의 개념은 구약성서에 뿌리를 둔 유대인 전통에서 나옵니다. 이 기도는 연합이라는 주제를 반영하며, 이스라엘의 집단적 정체성에서 발견되는 상호 연결성을 상기시킵니다. 추종자들 사이의 하나 됨을 위한 예수님의 호소는 일치를 향한 이스라엘 여정의 영적인 연속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시편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에서 발견되는 일치에 대한 열망과 평행을 이룹니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의 영광을 드러내 주시어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평생의 정성과 제자들에 대한 사랑이 드러나 있다. 아들의 영광이란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는 것이다.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므로 영광이다. 영적으로 세상의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영생은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세상이 있기 전에 아버지 곁에서 내가 누리던 그 영광을 아버지와 같이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창조하시기 이전의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만이 존재하던 영광으로 되돌아가게 하여 달라는 말씀이다.

     

    3. 다양성 속의 단결(이스라엘 역사와의 관련성):

     

    마태복음 21장과 요한복음 17장에 제시된 일치와 다양성이라는 주제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복잡성과 깊이 공감합니다. 역사 전반에 걸쳐 이스라엘은 분열과 포로의 시기뿐만 아니라 다윗과 솔로몬과 같은 지도자들의 지휘 아래 연합의 시기도 경험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께서 단결을 강조하신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국가적 단결을 위한 역사적 탐구와 유사하게 추종자들 사이의 결속을 향한 열망을 반영합니다. 화합을 위한 이러한 영적 요구는 이스라엘 과거의 복잡한 층위를 다루며, 다양한 관점에 직면하여 집단적 정체성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을 인정합니다. 정치와 지도자란 전쟁, 즉 욕심을 나타낸다.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돌아가지만 이 사람들은 세상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지켜 주십시오. 그리고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지상의 교회처럼 주의와 종파가 갈라지면 안 된다. -주의를 위하여 평생을 바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좋은 것이 있으면 -주의라도 바꿔야 한다. -주의나 교파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천주교, 정교회, 성공회는 교회 전통이 있고 교파도 1개이다. 그러나 개신교는 교회 전통이 없고 교파도 150개나 된다. 천주교는 교황이, 정교회는 총대주교가, 성공회는 의회에서 사도직을 계승하고, 개신교는 목사가 한다.

     

    이스라엘 역사의 렌즈를 통해 마태복음 21장과 요한복음 17장을 탐구하면서 우리는 영적인 가르침과 역사적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태피스트리를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은 이스라엘의 집단적 기억에 새겨진 희망, 투쟁, 열망을 반영합니다. 이 구절을 탐색하면서 우리는 신성한 것과 역사적인 것 사이의 원활한 연결에 대해 더 깊은 감사를 얻게 되며, 각 장은 이스라엘의 심오한 여정에 대한 지속적인 이야기에 기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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