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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의 여정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마태복음 5-7장, 즉 산상수훈의 신성한 땅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 블로그 게시물에서 우리는 예수의 심오한 가르침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당시 이스라엘의 사회 역사적 맥락을 탐구합니다. 기독교 교리의 초석인 산상수훈은 시대를 초월한 영적 통찰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와 그 시대의 사회적 도전 사이의 복잡한 상호 작용을 반영합니다. 우리와 함께 마태복음 5-7장의 내용을 풀어 이 설교에 담긴 시대를 초월한 지혜와 그것이 설교된 시대와의 연관성을 밝혀 봅니다.
1. 산상수훈: 역사적 현실 속에서의 말씀 실행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을 전하기 위해 산비탈에 오르시면서 이스라엘 역사를 배경으로 울려 퍼지는 영적인 선언문을 제시하셨습니다. 로마 통치와 종교적 율법주의가 복잡하게 뒤섞인 국가는 희망과 쇄신의 메시지를 갈망했습니다. 믿는다 하면서도 말씀에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믿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는 사랑하는 마음보다는 율법 수행을 강조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7장에 나오는 산상수훈을 갈릴리 바다 근처 가퍼르나움 언덕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간디는 종교가 달랐음에도 매일 성경 말씀을 봉독하였다고 합니다. 성경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명치유신 이후 일본을 개화시킨 다니구치다사오는 사랑의 실천으로 사자를 키웠습니다. 이슬람교는 수니파, 시야파, 수피파가 있고 그 중 수피파는 수행을 통하여 진리의화신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교훈과 복음은 다릅니다. 복음은 교훈에 더하여 행동여하를 불문하고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메시야가 오신다고 해도 메사야를 따르는 사람만이 천국 인이 됩니다. 복음은 누가 주는가?복음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할 것이다'로 시작됩니다. 현재에도 불완전하게 이루어지지만 미래에 완전하게 이루어집니다. 세상릐 행복은 각 사람의 만족감에 달렸으며, 쉽게 얻고 쉽게 잃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이 있다'는 하늘의 행복으로, 결코 빼앗길 수 없는 복입니다. 시편은 묵상집이며 율법에는 의무가 따릅니다. 그러나 복음을 믿으면 무조건 복이 따릅니다. 마음의 상태에 따라 복을 받기도 하고 행위에 따라 복을 받기도 합니다. 천국 복음이기 때문에 복을 천국과 관련시켜서 해석하여야 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모시년 나타나지 않습니다.영적 상태의 빈곤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야 합니다.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를 보면 교만은 이웃과 담을 쌓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이 낮은 바다로 흘러가듯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하나님의 진리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경고를 강력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진리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경고를 강력하게 하시기 위하여 과장법을 쓰셨습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생기는 욕심 때문에 애통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면 회개하고 용서를 받고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출발은 죄의 인식입니다.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회개하여야 합니다.
2. 율법 이행: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거룩히 구별된 것은 정화시키기 위해 소금을 뿌립니다. 소금이 아니면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는 빛이 되거라가 아니다. '이미 세상의 빝'이라는 뜻입니다. 기독교인이 가는 길은 어두워도 예수님의 빛을 보고 따라가면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세상의 빛입니다. 우리 제자들도 세상의 빛이라 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의 빛'이라는 것을 늘 자각하여야 합니다. 소금이 소모, 즉 희생되면서 세상은 정화되는 것입니다. 산상복음은 사랑과 정의의 실현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어떻게 새 계명이 되겠는가?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고 창조때부터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영원한 계명이기 때문에 과거도 미래에도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새 계명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자기만 사랑합니다. 사랑은 이웃과의 통로입니다. 미움은 담장입니다. 인류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사랑하면 그 사람은 우주전체까지 넓어집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랑을 주신 것입니다. 큰 사랑으로 그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즉 영의 커짐과 마음의 평화스러움, 황희를 느끼게 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아가페 사랑처럼 완전한 사랑을 하십시오. 예수님도 구약율법을 그대로 따르면서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처럼 더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나님의 야훼를 사랑하여라" 언제나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사랑할 때는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간디는 독사도 사랑했다고 합니다. 미워할 때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 하나님은 사랑을 받는 이에게 조건을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로 나타나고 그리스도의 사랑은 십자가로 나타납니다. 우주를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을 알 수 있습니다. 공의롭다는 것은 잘하면 상을, 못하면 벌을 줍니다. 심판 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인들의 말씀을 보면 신상필벌을, 자연을 보면 하나님의 신성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목숨을 바쳐서 사역을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상대의 가치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장 귀한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생명을 바치십시오. 왜 인간을 그렇게 사랑하였는가! 매일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사랑도 진보합니다. 자기를 줄 때 자기를 떠나서 영생합니다.
3. 견고한 땅 위에 세우는 일: 하나님의 의
사랑은 잘못을 용서하고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의는 잘못을 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세상의 의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잘못한 사람에게도 사랑이 내포된 의입니다.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면서, 또 그 길로 잘 갈 수 있도록 인도하면서 벌을 주십니다. 세상의 모든 책은 땅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관한 책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천국에 관한 책이고 영원한 책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를 아는 것이 최고의 지식입니다. 우주가 기계 돌아가듯 무의미한 것이지만, 우주와 우리의 관계는 목적을 가지고 사랑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관계입니다. 세상 역사는 약육강식의 장이라지만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에는 역사가 화합하는 장입니다. 이런 사실이 따뜻한 사실로서 다가옵니다. 이 세상은 너무나 몰인정하지만 '하나님의 사랑' 이시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 세상을 기대하고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는 말씀을 통해 이 세상이 의로워질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살아 갈 수 있습니다. 현실의 불만과 억압을 참고 이겨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의를 동시에 실현시키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것을 온전히 실현하셨습니다. '구원의 십자가' 사건에 의해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를 위한 대속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그리하여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까지 가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의는 독생자를 통하여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자기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대속하여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을 때에 구원을 얻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가 의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인간을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무조건적인 구원이 아니라 의에 의해서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믿음이 있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구원하심과 동시에 심판하십니다. 구원하심은 신약성서의 초립 때 사랑의 하나님으로 오셨을 때 실현하셨습니다. 심판하러 오시는 하나님은 재림하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일곡을 거두시는 것처럼 구원과 심판을 완성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천사조차도 끊지 못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두려운 분이십니다. 심판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의와 사랑이 십자가상에서 결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죄를 지은 인간을 죽이지 않으십니다. 그렇지만 의가 되신 하나님은 죄 범한 인간에게 반드시 벌을 주셔야 했습니다. '부처' 하는 말은 '깨달은 자' 를 뜻합니다. 불가에 의하면, 이 세상은 인연으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인연은 하나의 원인입니다. 원인이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서 상호작용하여 모든 것이 되어 갑니다. 국화씨, 채송화씨는 원인입니다. 씨앗이 자라려면 따뜻한 햇볕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조건입니다. 하지만 조건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므로 이 세상도 변합니다. 그러므로 인간도 무상한 존재입니다. 어느 한 가지를 가지고 전체를 말해서는 안 됩니다. 죽었다고 슬퍼할게 무엇인가? 변하는 것에 애착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원인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마음이 그 원인을 만듭니다. 선한 원인을 만들면 선한 결과를, 악한 원인을 만들면 악한 결과를 만듭니다. 인간을 회개시켜서 의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며 의입니다.
결론적으로, 마태복음 5-7장은 이스라엘 역사의 구조와 시대의 시급한 문제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시대를 초월한 걸작으로 등장합니다. 산상수훈은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영적 인도, 도덕적 명확성, 변혁적 비전을 제시하는 빛의 등대 역할을 합니다. 그 깊이를 파고들면서 우리는 역사의 경계를 뛰어넘어 세대를 넘어 인간의 경험과 공감하는 지혜의 보물창고를 발견합니다. 역사적 도전 속에서 하나님의 담론인 산상수훈은 여전히 그리스도교 가르침의 초석으로 남아 있으며, 모든 사람이 왕국 원칙의 확고한 기초 위에 자신의 삶을 살도록 권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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