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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우스 왕

     

    구약성서에 자리 잡은 에스라서와 느헤미야 서는 회복과 재건의 중추적인 시기에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제공합니다. 가나안 정착 후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구약시대에 언제까지 하나님이 나타났는지를, 이스라엘 역사와 그 주변 국가들의 역사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팔레스타인은 지구의 중심지라서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의 문명이 접촉하는 지대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발달한 나라들, 즉 이집트,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신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등이 있었습니다.

     

    1. 이스라엘의 역사 :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바빌론 유수

     

     

    국가의 출현은 지금으로부터 오천 년에서 육천 년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나일강 유역에서 일어난 애굽 문명은 기원전 30세기에 통일국가가 되었습니다. 사후 세계를 중시하여 종교가 발달하였습니다. 이집트의 고유법은 오천 년 전에 생겨 기원전 330년 경까지 240편의 법이 단행본으로 나왔습니다. 바빌로니아는 아모리트 족으로 오천 년 전 원주민을 몰아내고 유프라테스 강변의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전 20세기에 통일국가를 이룩합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삼천칠백 년 전에 현실을 중시하던 그 지역의 법들을 통합한 것입니다. 페니키아는 기원전 14세기에 시돈과 두로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기원전 10세기에 통일국가가 되어 사울, 다윗,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왕정시대가 열렸고, 각각 40년씩 통치하였습니다. 분열국가로 접어들면서 북쪽 이스라엘은 19대 왕조였고 아시리아에 멸망하여 하나님은 한낱 지방신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아시리아는 기원전 8세기에 철기로 무장하면서 기원전 7세기에 이 지역을 통일합니다. 코를 베는 등 악행을 하였습니다. 메디아는 이란계의 아리안 족으로 말을 기르며 살았습니다. 수도는 엑바타나입니다. 신 바빌로니아와 협력하여 아시리아를 정복하고 헷 족 땅에서 인도까지 점령합니다. 수메르 지방에서 도시국가를 형성하게 됩니다. 남쪽 유다는 20대 왕조로 바빌론에 포로로 붙잡혀갑니다. 이 당시의 페니키아, 이스라엘 등의 소국들은 강대국인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이집트 중 한 나라에 조공을 바쳐야 했습니다. 2대 왕 느부갓네살은 성벽 구축과 상공업, 예술 및 과학 등을 발달시켰습니다. 창세기 12장부터, 즉 아브라함에서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기원전 8세기부터 흩어집니다. 디아스포라는 흩어져 사는 민족입니다. 7세기 중엽에 마호메트의 이슬람제국이 지배하면서 1258년까지 사라센제국에 속했습니다. 12세기에 십자군 원정 때 짧은 시기동안 잠깐 벗어나긴 했습니다. 19세기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살자라는 이스라엘 민족주의 운동이 있었습니다. 시오니즘이라 합니다. 1917년 1차 대전 후 유엔에서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 인과 아랍 인으로 나누도록 결의합니다. 1945년 5월 2차 대전 후 드디어 이스라엘이 독립합니다. 이스라엘의 위치는 서남아시아의 지중해 동쪽입니다. 전체면적은 전라도 면적으로 전체의 반은 사막지대입니다. 인구는 500만 정도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침략을 받았습니다. 50번 침략에 100번 무너져 피바다를 걷는 것과 같습니다. 기후는 겨울에는 비가 옵니다. 1월에서 4월은 건기로 비는 1000mm 정도 옵니다. 우리나라는 1100mm 다. 비 올 때만 물이 흐르고 평상시에는 사막입니다. 와디는 딱딱한 땅 위에 비가 내리므로 홍수처럼 모래나 흙이 떠내려옵니다. 기온은 8월이 제일 덥습니다. 갈릴리 지방은 24도, 요르단은 32도, 지구대 밑은 52도입니다. 1월은 북부 갈릴리 7도, 요르단과 지구대는 4도입니다.

     

    2. 이스라엘에 은혜를 베풀었던 왕들: 페르시아의 초기 

     

    포로 귀환 당시 고레스왕은 도덕적이었습니다. 페르시아는 셈계의 인도-유럽어족으로 이란의 전신입니다. 고레스왕은 점령지의 수도를 그대로 보존했기에 피지배 국민들이 그들을 정복자가 아니라 구원자로 여겼습니다. 그가 해방시킨 유다인은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만 귀환시켰는데 50만여 명이었습니다. 중앙아시아를 방어하기 위하여 그리스와의 전쟁 전에 먼저 배후를 안정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고레스왕은 '파사가다'라는 수도에 매장되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스승이자 입법자로 고레스왕을 모셨고, 페르시아 인들은 그를 아버지로, 이스라엘인들은 은인으로 모셨습니다. 고레스의 뒤를 이은 캄비세스 왕은 이집트를 정복한 뒤 이집트의 태양신 '라'를 , 또한 국가행정을 그대로 유지시켰습니다. 그는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북부까지 점령했지만 보급 부족과 본국의 소유 사태로 인해 팔레스타인 북부까지 퇴각하는 중에 말에 치어 죽었습니다. 다리우스 1세는 고레스가 동방을 정복할 때와 캄비세스가 애굽을 정복할 때도 동반하였습니다. 그는 아시리아처럼 잔혹한 정치를 하였습니다. 바빌론 지방의 상형문자는 이천 년 동안이나 사용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영국의 고고학자 로린스가 다리오 1세의 비석을 해독하였습니다. 똑같은 내용이 페르시아어, 바빌로니아어, 엘람어로 쓰여 있습니다. 엘람어는 기원전 8세기의 국제어이며, 예수님도 사용하셨습니다. 이 비문은 높이가 18미터로 광개토왕 비석과 비슷합니다. 다리우스 1세는 이란과 같은 족속인 트라키아라는 나라를 정복하였습니다. 그리스 본도로 들어간 것은 동양인으로는 처음이었습니다. 훈족 및 칭기즈칸이 쳐들어 간 것은 칠백 년 후의 일입니다.

     

    3. 예루살렘 재건: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회복 노력

     

    이 역사적인 이야기의 첫 번째 장은 페르시아 왕 키루스가 포로 된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령을 발표하면서 시작됩니다. 스룹바벨과 나중에는 에스라의 지도 아래, 돌아온 유배자들은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에스라서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국면을 이루는 성전 재건과 예루살렘 예배의 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기관이자 제사장인 에스라는 율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백성들 사이에서 종교적 관습을 회복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 준수에 대한 그의 강조는 국가의 영적 쇄신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페르시아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인 느헤미야는 나중에 도착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외부 위협으로부터 도시를 강화하는 데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기 이백 년 전에 이사야 예언자가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으로 포로디어 잡혀갈 것과 고레스라는 왕의 이름까지 예언하였으나 사람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제18대인 여호야김 왕 때 다니엘이, 제19대의 여호야긴 왕 때 에스겔 선지자가 끌려갑니다. 유다가 멸망한 시드기야 왕 때로 느부갓네살 왕에게 끌려갑니다. 1차 귀환자인 스룹바벨이 남 유다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성전은 제단만 바로 세우고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 후사제 예수아, 학개 등의 예언자가 일어나 백성들을 일깨워 20년 만에 성전을 완성시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행정적, 군사적으로는 스룹바벨과 에스더를 보냈고, 영적으로는 예언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여호수아가 기원전 14세기경에 초막절을 지킨 뒤, 약 천 년이 지난 후 에스라가 다시 지키게 됩니다. 포로생활 이후 성전과 회당이 생겼습니다. 회당은 오늘날의 교회와 같습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인들로 하여금 이방민족과 통혼하던 관계를 끊게 하였습니다. 결혼 자체보다도 우상숭배 때문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이방인과 결혼하여 남과 북으로 나뉘었던 것입니다. 포로생활 이후 우상숭배는 버렸지만 이방민족의 낮은 생활습관을 받아들였습니다. 느헤미야에게는 고국의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여 한 국가로서의 권위를 세우려는 의욕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빌론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성전을 건축할 때 산발랏이라는 사마리아 통치자가 방해를 하자, "모든 사람은 자기 종을 데리고 예루살렘 성 안에 묵으면서 밤에는 파수를 서고 낮에는 일하도록 하여라"라고 명령하면서까지 성전을 완성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결론적으로,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재건과 회복의 중요한 시기에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풍부한 태피스트리를 제공합니다. 귀환한 망명자들이 직면한 어려움부터 영적 쇄신과 국가 통합의 승리에 이르기까지, 이 이야기는 국가의 정체성을 정의한 회복력과 신앙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이스라엘이 역사를 되돌아볼 때,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유산은 여전히 영감의 원천으로 남아 있으며, 그들의 지속적인 유산과 신앙과 일치에 대한 새로운 헌신에서 나오는 힘을 상기시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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