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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제자들

     

    신약성서의 마태복음 26장, 마가복음 14장, 요한복음 12장은 예수님의 영적 여정뿐만 아니라 이러한 이야기의 배경을 형성하는 이스라엘의 풍부한 역사적, 문화적 태피스트리를 이해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형에 이르게 되는 사건들로 가득 찬 이 구절들은 단지 종교적인 문헌일뿐만 아니라 로마 통치 하의 유대의 사회정치적 환경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역사적 문서이기도 합니다. 

     

    1. 아가페: 그리스도인들의 사랑      

     

    "그들이 음식을 먹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받아 먹어라. 이것이 내 몸이다"라고 하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이다. 기독교 신자들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면서 의무를 다하였다.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시고 생명을 주시기까지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셨다. 참을 만나면 참 기쁨을 만난다. 덴미크의 키에르케고르는 기독교는 교회의 거대해짐으로 해서 망했다고 말하며 모든 인간은 단독 자이므로 목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천주교에서는 자신들만의 교리를 받아들인다. 페스탈로치는 기독교정신으로 새로운 교육이 시작되어야 하고, 올바른 정신으로 교육을 하여야 한다고 했다. 초지일관 어떤 정신을 가지고 끝까지 하는가가 중요하다. 심훈의 상록수라는 책에 최영신은 안산의 청석 골에서 야학을 하였다. 일체의 과거를 묻어 버리고 오직 현재를 의지하며 억세게 미래를 맞으려 했다. 임꺽정 전에는 양반에 대한 반항심과 정선지방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의협심이 나타난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다. 그래서 우리는 환경문제와 새 생활 운동으로 물질만능주의와 물질에 대한 욕구를 버려야 하며, 자연생활로 돌아가기 위한 운동을 하여야 한다. 루소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이 인간이 자연생활에서 떠나면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새 문화운동은 바벨탑 문화가  지금의 문화이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생명의 문화운동을 하자는 것이다. 예전의 사제 간 또는 친구 사이는 진실하였다. 마음의 깊이에 따라 사랑이 깔려 있었다. 입춘이 지나고 설이 지나면 새봄이 온다. 마음속의 새해는 희망에 가득 차 있다. 예수님을 우리 마음 가운데 모시고 살아가면 새로운 희망이 생긴다. 신과 인간 사이에는 무한한 질적 차이가 있다. 심연이 있다. 그러므로 신과 인간은 융합할 수 없다. 다만 교제만이 가능하다.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교제하는 것이다. 성육신 하는 것이 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2. 제자들:  마가복음 14장의 역사적 맥락 속의 언약

    유대교는 구약성서를 믿으며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았다. 기원 전 586년에 바빌로니아, 기원전 570년에 아시리아 등으로 흩어진다. 이렇게 흩어진 이스라엘인을 디아스포라 하며 유랑민을 뜻한다. 기독교는 신약성서를 믿으며 복음은 영생이고 예수님이 구세주심을 믿는다. 말씀을 읽고 예수님을 믿고 살아야 한다. 시리아의 안디옥은 최초로 이방교회를 세우고 이방인에게 전도한 곳이다. 요한 마가와 바나바, 바울 사도는 1차 전도여행을 함께 한다.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티오키아를 여행하면서 구세주를 믿고 회개하여 세례를 받으라고 전도하였다. 이고니온 지역은 인구오십만 명으로 현재는 개화된 회교들이 산다. 그들은 수염을 기르지 않는다. 리스트라에서 이백 리 떨어진 곳이다. 마가의 원래 이름은 '은혜의 야훼'라고 하는 요한이었다. 그녀의 어머니 마리아는 사도들의 집회소로 그녀의 다락방을 내주었다. 야보고가 순교하고 베드로가 감옥에 갇히던 험악한 시대였다. "몸에 고운 삼베만을 두른 젊은이가 예수를 따라가다가 사람들에게 붙들리게 되었다" 도망한 젊은이를 베드로한테 전해 듣고서 마가가 기록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라고 하였고, 감람산에서 기도할 때도 "너희는 그의 망을 들으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시작"으로 시작된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가 마가복음의 주제다. 

    그러므로 최후의 만찬은 구속과 회복을 향한 이스라엘의 갈망에 대한 더 넓은 서술에 반대되는 유대 전통과 신흥 기독교 신앙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합니다.

     

    3. 온 인류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 요한복음 12장의 심판

    피할 수 없는 심판이 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뿐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부까지 믿는 것이고"에서 '큰 소리'로 말씀하신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적인 것이 아닌 공적인 말씀이며, 곧 다가올 일이므로 긴박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도 보는 것이다"에서 '본다는 것'은 예수님을 영적으로 보는 것이고, 믿음을 가지고 신앙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나는 빛으로 이 세상에 왔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은 어둠 속에서 살지 않을 것이다" 라는 것은 예수님이 생명의 빛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일반인은 살아있지만 죽어있다. 생명의 빛이 없으므로 송장 떼라고 하셨다. 참 빛은 생명의 빛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여기고 진실의 말씀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그를 단죄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을 단죄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를 배척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단죄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세상 끝 날에 그를 단죄할 것이다" 초림 시기에는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 그러나 재림 시에는 심판하러 오신다. 예수님의 말씀은 심판의 법으로 4 복음서는 심판법전이다. 심판하러 오시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곧 심판의 법임을 선포하러 오셨다. 법을 알아야 일반인들이 지키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아들의 권한을 받으셨다. "나는 그 명령이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이나 아버지께서 나에게 알려주신 대로 알 하는 것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말씀이다. 아주 혹독한 말씀을 하시는 것은 그 근본에 생명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달과 우주의 신비 및 인간의 생명도 발달한 면이 있지만 선과 악의 구분에 있어서는 도덕적인 신앙이 떨어지고 있다.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도 흐려졌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조류가 수렴되어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순간으로 이어지는 예루살렘의 불안한 분위기를 반영합니다.

     

    마태복음 26장, 마가복음 14장, 요한복음 12장은 이스라엘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 깊이 박힌 풍부한 이야기를 제공합니다. 이 구절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으로 이어지는 사건들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건들이 펼쳐진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역사상 이 중요한 시점을 정의하는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요소들을 봅니다. 우리는 예수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배경의 복잡성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얻고, 전 세계 공동체의 정체성과 신앙을 형성하는 데 있어 이러한 이야기의 지속적인 유산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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